"고문기술자 이근안, 2026년 3월 25일 향년 88세로 사망했습니다. 목사로 변신하고도 끝내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 없었던 그의 삶 전체를 정리해 드려요. 당신이 몰랐던 이근안의 진짜 이야기."
1. 이근안은 누구인가 — 프로필 한눈에 보기
이근안(李根安)은 1938년 3월 21일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전직 경찰관이자 목사예요. 겉으로 보면 그냥 평범한 경찰관처럼 보이지만, 그 이름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고통이 담겨 있어요.
그는 1970년대부터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일했어요. 한마디로 나라에서 "간첩을 잡아라"는 명령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그 방법이었어요.
2. '고문기술자' — 그 별명 뒤에 숨겨진 충격적 진실
이근안이 사용했던 고문 방법은 지금 들어도 몸서리쳐질 정도예요.
발가락 사이에 쇠봉을 꽂아 전기를 통하게 하거나, 얼굴에 타월을 올리고 뜨거운 물을 붓는 방법, '날개 꺾기', '통닭구이', '관절빼기' 등 다양한 가혹 행위로 허위 자백을 받아냈어요.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어요. 그게 진짜 간첩이 아니어도 고문을 통해 "나는 간첩이다"라고 말하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 거죠.
대표적인 피해자가 바로 故 김근태 전 의원이에요. 그는 이근안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 뒤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다 2011년 세상을 떠났어요.
3. 도피, 자수, 그리고 감옥 — 이근안의 법적 결말
민주화가 되면서 이근안의 행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수사가 본격화되자 그는 무려 10년 이상 도피 생활을 했어요. 그리고 1999년, 스스로 자수했어요.
이후 재판에서 고문 및 불법 구금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징역 7년을 선고받아 2006년 만기 출소했어요. 하지만 많은 피해자들은 "그게 전부냐"며 분통을 터뜨렸어요. 수십 명의 인생을 망가뜨린 대가치고는 너무 가볍다는 거였죠.
4. 목사 이근안 — 회개인가, 쇼인가
출소 이후 이근안은 뜻밖의 행보를 걸어요. 옥중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해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았어요. 그리고 공개 간증을 다니며 "과거를 반성한다"고 말했죠.
그런데 이게 진심이었을까요?
그는 김근태 전 의원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는 척했지만, 교회 설교 중에는 김 의장을 고문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건전지 하나 들이대면서 겁을 줬더니 빌빌거리더라"고 본색을 드러냈어요.
이 한마디가 모든 걸 설명해줘요. 반성이 아니라 자랑이었던 거예요.
결국 2012년 교단으로부터 목사직을 면직당했어요.
5. 자서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 진짜 고백이었을까
2012년 이근안은 자서전을 출판했어요. 제목부터 충격적이죠,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많은 사람들이 "이번엔 진심으로 사과하는 건가"라며 주목했어요.
하지만 내용을 보면 실망이 크죠. 고문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보다는 "그 시대가 그랬다"는 식의 변명이 주를 이뤘어요. 피해자들은 오히려 2차 가해를 받은 기분이라고 했어요.
실제로 1978년 납북귀환어부 가족을 불법으로 체포하고 고문해 간첩으로 만든 사건에서, 자서전을 통해 그 사건이 진짜 간첩 사건이라는 취지로 2차 가해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어요.
6. 사망 직전까지도 — 끝내 없었던 진짜 사과
이근안은 사망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악행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았어요.
2025년 1월에는 SBS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그의 이야기가 방영됐는데, 프로그램은 이례적으로 마지막 멘트를 생략했어요. 그게 말해주는 메시지가 있었죠.
그리고 2026년 3월 25일, 서울의 요양병원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어요.
결론 — 우리가 이 이야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이근안의 죽음은 단순한 한 노인의 죽음이 아니에요. 그것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챕터가 닫히는 순간이에요.
실생활 팁이자 우리 모두를 위한 당부: 이근안 같은 역사 속 인물을 제대로 아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방법이에요. 국가가 개인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권력이 잘못 사용될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나오는지를 잊지 않아야 해요.
📚 이근안 관련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영화 《남영동 1985》를 꼭 보세요. 당시 고문 피해자의 눈으로 그 시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요.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이근안은 왜 '고문기술자'라고 불리나요? A. 다양한 고문 기법을 개발해 사용했기 때문이에요.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기술처럼 체계화된 고문을 했다는 점에서 이 별명이 붙었어요.
Q2. 이근안은 언제 사망했나요? A. 2026년 3월 25일, 향년 88세로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사망했어요.
Q3. 이근안은 감옥에 갔나요? A. 네, 1999년 자수 후 재판을 거쳐 징역 7년을 선고받고 2006년 만기 출소했어요.
Q4. 이근안은 왜 목사가 됐나요? A. 출소 후 종교에 귀의해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2012년 교단으로부터 면직됐어요.
Q5.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사과를 했나요? A. 공식석상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면에서는 피해자를 조롱하는 발언을 했어요. 진심 어린 반성이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에요.

